‌일상예술가 최예지가 바라본 제주는 4계절의 꽃이 모인 소담한 꽃다발이 되고 누군가에겐 평범한 바다가 상처 입은 마음을 위안받는 공간이 된다. 섬세한 예술가의 눈으로 제주의 일상을 예리하게 읽어내는 그녀. 소소하다고 생각했던 제주의 하루가, 생활이 그녀의 사진과 그림, 글을 통해 빛나는 일상의 순간들로 변주한다. 그래서 그녀의 일상은 하루하루 반짝반짝하고 탄탄하게 채워진다.

“일상 속에 바다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SNS에서 ‘서울에서 몇 일간의 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내려와 생활하니 일상이 회복된다’는 문구가 인상 깊었다. 누군가에겐 여행지인 제주가 일상인 당신에게 주는 특별함은 무엇인가?
일상이 여행처럼 느껴진다는 거다. 특히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 쭉 자란 내게 제주 바다는 여전히 특별하게 다가온다. 그저 바다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된다.

넓은 제주에서도 지금의 보금자리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
처음 두 달은 민박집에서, 그 뒤로는 4평 원룸에서, 다시 7평 원룸에서, 1년 뒤 다시 투룸인 빌라로 이사를 했다. 처음 제주에 내려올 때만 해도 두 달만 살아 볼 요량이었다. 당연히 짐도 별로 많지 않았다. 두 달이 어느새 1년이 되고 3년으로, 계속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니 살림살이가 늘어나고 있다. 지금의 보금자리는 혼자 살기 큰 평수이지만, 년세가 저렴한 편이라 맘에 들었다.

집은 개인적인 취향과 스타일이 그대로 묻어나는 곳이다. 이곳을 꾸밀 때 어떤 것에 중점을 뒀나?
지금 사는 집은 20년이 넘은 오랜 아파트라 모든 것이 낡아 있었다. 예쁜 낡음이 아니라 지저분한 낡음이라 최대한 깨끗하게 벽지와 몰딩, 방문에 페인트칠을 하고 스위치에서부터 콘센트까지 모두 교체했다.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공간이 있다면 어디인가?
커다란 2m 책상이 놓인 작업실이다. 이전 원룸에 살 때는 인터넷에서 산 2만 원짜리 책상을 사용했다. 집을 옮기면서 뭔가 불안한 삶에서 책상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단단하게 버터 주면 좋겠다 싶어 이웃 목수에게 부탁해 큰 책상을 만들었다.

“일상의 무너짐을 크게 겪고 나서부터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 
시작한 것이 글과 그림이다. 
소소한 일상을 하나둘 기록하고 그림으로 담아내며 
많은 위안을 얻고 나아가 나를 다 잡는 기회가 됐다.”

집을 작업실 삶아 일하다 최근에 새로운 작업실을 오픈했다고 알고 있다. 이유가 있나?
일하면 할수록 주거공간과 일터는 구분되어야 함을 느꼈다. 조금 더 일에 책임감을 느끼고 싶었고, 무엇보다 일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것이 싫었다. 가령 미술 도구나 그림들이 베란다에 싸여 있으니 짐 정리가 잘 안 되어 답답했다. 제주로 찾아와 연락하시는 분들도 많은데 매번 카페에서 미팅 하거나 만나는 것도 한계를 느껴 작업실을 구하게 됐다. 

벨롱장에서 초상화를 그리는 일 외에도 여행책도 내시고 다양한 활동을 하는 걸로 알고 있다. 좀 더 자신이 하는 일을 소개해달라.
제주에 내려와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그림이었고, 벨롱장이 그 장이었다. 그림으로 시작된 일들 글과 사진으로 이어졌다. 제주의 생활을 글과 그림으로 기록해 나가다 보니 좋은 기회가 닿아 책으로도 이어지더라. 책 속의 내용은 내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은 수필들이다. 또한 다양한 기업들과 일러스트레이터로 협업 상품을 만들고 있다. 그 외에 한국문화예술교육원에서 진행하는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예술가로 활동하고 있다.

일상과 여행을 똑같은 중요도로 생각하고 그림과 글로 기록하기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대를 나와 일러스트레이터가 돼야겠어! 작가가 돼야겠어! 라는 다짐으로 직업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 경영학과를 졸업해 취업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당시 일상의 무너짐을 크게 겪고 나서부터 도무지 무엇을 해야 할지 방향이 잡히지 않을 때 시작한 것이 글과 그림이다. 소소한 일상을 하나둘 기록하고 그림으로 담아내며 많은 위안을 얻고 나아가 나를 다 잡는 기회가 됐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밖에 없는 순간.”

‌여행할 때 중요하게 생각하는, 꼭 챙겨가는 여행 준비물이 있나? 
가벼운 조명과 필름 카메라를 꼭 챙긴다. 오늘도 라이카 필름 카메라를 가지고 왔다.

여행 갈 때 혼자 하는 여행을 즐기나? 아니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을 즐기는 편인가? 
혼자 하는 여행과 누군가와 함께 하는 여행 반반이 딱 좋다. 그래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친구와 여행을 간다. 

사람마다 여행을 즐기는 방법도 참 다양하다. 평소 여행을 가면 어떤 유형인가?
여행을 갈 때는 숙소와 비행기 표만 정해두고, 한 곳에 2주 정도 머문다. 여행의 목적은 언제나 ‘해야 할 일을 없애기’로 잡고 지금까지 유지 중이다. 어딜 가거나 무언가를 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상황에 맞추어 느긋하게 여행한다.

‌제주가 당신의 일상이지만, 분명 문득 여행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것 같다. 언제 그런 생각이 드나?
해야 할 일들에 치여 있을 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을 때 여행하고 싶다고 생각한다. 요즘은 프랑스 여행을 자주 꿈꾼다. 프랑스에 가면 오르세 미술관에 꼭 가볼 참이다.

제주 라이프에 대해 로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막상 내려와서 어떤 걸 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하는데, 그분들에게 조언해 줄 수 있을까?
목표를 아주 간단하게 설정하기. 나의 제주 라이프의 로망은 ‘제주의 사계’ 그뿐이었다. 무엇을 하던 사계절만 지내면 된다는 간단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하는 일에 의미를 두기보단 제주를 느끼려고 노력했다. 뭘 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우선 몸을 움직였다. 카페에서 일도 하고, 게스트하우스 청소도 하고, 제품 촬영도 돕고, 식당에서 서빙도 하면서 제주의 사계를 보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림을 그리게 되고, 그게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당신은 여행을 좋아하나요? 여행의 무엇을 좋아하나?
나에게 있어서 여행의 To do 리스트가 없어지는 거다. 여기에 있으면 항상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다. 여행을 갈 때만은 자유롭게 나를 놓는다. 여행 갈 때 그 흔한 유심칩도 챙기지 않는다. 뭔가 해야 한다는 것이 없다는 점이 여행이 주는 매력이다.

일상 속에서 여행하는 당신만의 노하우가 있나?
여행과 똑같이 To do 리스트 없애기를 활용하여 여행과 비슷한 환경으로 만든다. 잠시 핸드폰을 꺼둔다거나, 여행에서 마주하는 숙소의 낯선과 색다름을 일상에서도 느끼고 싶을 땐 제주의 예쁜 숙소에 묵는 것이 나만의 방법이다. 여행에서나 일상에서나 똑같이 적용되는 것도 있다. 지금 흐르고 있는 이 시간이 내 인생에서 딱 한 번 밖에 없는 순간이라는 것을 자꾸 상기하는 것이다. 꼭 여행을 떠나지 않아도 지금 여기에 머무는 것들이 소중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다.

일상이 있어 여행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까, 아니면 여행이 있어 일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는 걸까?
일상과 여행은 나에게 둘 다 필수적이다. 일상이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에서 여행을 떠나다 보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때 불행한 기분이 들고, 덜 행복한 느낌이 든다. 막상 일상이 소중하게 느껴지다 보면 여행도 같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일상이 조금 탄탄하게 채워져 있다면 돌아갔을 때 더 열심히 살고자 하는 맘이 더 든다.


트래블링 탐스, 사람을 여행하다 - 최예지 편의 영상은 @toms_korea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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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itor Boouk Magazine @booukmag
Photographer Mok Jinwoo @lociel